구도의 여정 4장 1절
내 삶을 살아줄 그 누구도 없다.
나는 나의 역사일 뿐
천(天)의 죄인 되어
이 땅에 버려져
수많은 나로 태어나고 죽어야 했던
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역사
책임인가
의무인가
본능으로서의 의지인가,
몇천년,
몇만년,
윤회를 이어온 길고 긴 역사
천손으로 온 나의 역사이다.
아메리카대륙을 걸어오면서도
시베리아
그 긴 겨울 세찬 눈보라 맞으면서도
히말라야산맥 넘어 만리 황진 속에서도
나로 태어나고
나로 죽었다.
죽어서도 나였으며
살아 숨쉬면서도 나였다.
저 우주의 별로 죽어버린 내 과거는
천 년조차 짧은 찰나 되어
비로소
백두 천지(天池) 위에
오늘과 내일로 빛났다.
수많은 존재 속에
나 자신을 일임한 채
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
연약한 작은 유령의 몸짓으로
본능과 의지가 하나 되어,
이 땅,
어딘가에 만년 세월 잠들어 있을
천지(天地) 근본을 찾아서 떠나는
나의 길이야말로 어제의 나를
새로운 나로 바꾸어 주리라,
천지(天地)의 성난 눈보라 휘몰아치고
아무런 대책조차 마련되지 않은
이 땅이건만
내 미래의 삶이 끝없이 이어진 곳으로
또 다른 낯선 곳으로
가는 길이야말로 어린 유령의 나에게
새로운 활기를 더해 주었다.
몇천년 내내 허위단심 아리랑으로
슬픔 견디어 온 삼천리
남북의 강토 산 길 물 길 돌아
두려움도 삼키고
한가닥 남은 슬픔도 삼키고
남은 미련을 단념하듯 팽개치고
나는 떠나갔다.
흐르는 강물에 잎새 되어
떠내려가면서 부박한 이 땅의
삶들을 보아야 했다.
가난과 저주의 넋두리가
허공을 가득 채우고
절망과 분노의 맹세가
산하를 메우건만,
인류환란의 오늘을 있게 한
저주받은 천손의 과오를 깨우치지 못한 채,
탐욕의 시뻘건 두 눈과
야위어 버린 가슴으로
학대하는 자와 학대 받는 자들을
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하는
무력한 사내들의 한숨과 비애를 보았다.
천손의 어머니요.
천(天)의 혈 이어온
인류의 어머니 된 근본을 모른 채,
인습과 관념의 굴레에 묶여버린
그래서 무능한 이 땅의 사내들에게
일생을 담보하고 살아가도록
일찌감치 운명 지어진
천형의 아픔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
이 땅의
가난한 아낙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있는 통곡을 보았다.
인류와 민족에게
천손의 이 비극을 팔아먹은
위정자들의 아우성 소리에
귀머거리 되고 눈 먼 소경 되어
발 구르며 손뼉 치는 소리에
뿔뿔이 흩어져 철천지원수 되어
서로가 손톱 세워
가슴에
얼굴에
상처 내고
돌아서는 야윈 어깨에 칼을 꽂고
날나리 장단에 병 신 춤 추면서 살아가고 있는
인류가 장손의
비열한 몸짓과
비굴한 웃음 앞에서
누가 자아를 말하는가,
저 만년의 별빛으로도
눈 뜨지 못한 천손들이여
무명과 어리석음의
저 어둠으로부터
눈을 떠라,
그리고 떠나자,
사랑할 줄 모르는자,
사랑을 잘못 정의하는자,
진실을 모르는자,
진실을 잘못 정의하는 자들을,
거룩하게
황홀하게
거짓없이
주저없이 사랑하기 위하여
내 할아버지 할머니 아비 어미
그 이전의 수많은 조상들의
시간과 본질을 이어온
오늘의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서
이 땅에서의 마지막 먼 길을 떠나자.
✍ 원시
천공(天空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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